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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지배하에 있던 러시아가 독립하여 결국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를 점령하고 러시아는 점차 유럽으로 편입되었다. 이번 호에는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점령하는 과정을 다루고 다음 호에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그 다음 호에는 러시아 유럽의 일원이 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다루겠다.
러시아 이전의 시베리아
시베리아는 아주 추운 지역이어서 징키스 칸이 바이칼까지 정복하기 전에는 여기 저기 분산되어 있는 부족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원래 모스크바 지역에는 백인종으로 간주되는 핀란드-우그릭 계통의 주민이 살았는데 결국 슬라브족에 밀려 현재는 핀란드에만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랄산맥에서 카자흐스탄 바이칼 서부에 이어지는 지역에는 투르크 계통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징기스 칸 초기인 1207년 큰아들 조치가 바이칼 주변의 시베리아를 점령하였고 우랄산맥으로 이어지는 서부시베리아는 조치의 큰아들 오다와 그 후손들이 점령하여 통치하였다. 결국 중앙시베리아와 동시베리아는 원나라 쿠빌라이 칸의 통치 하에 들어가고 서부시베리아는 황금군단에 의해 지배되었다. 황금군단이 약화되면서 1500년대까지 시비르 칸 국이 지배하였다.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 계통이 진출하여 우랄산맥 서쪽에 다양한 소국들을 성립시켰고 결국 이들을 통합한 우랄산맥 서쪽의 시베리아 대부분을 포괄하는 카잔 칸 국이 형성되었다. 몽골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중앙아시아, 남부러시아, 서부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여러 칸 국들이 생겼으나 결국 모두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남부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크림 칸 국을 1441년 크림반도에서 투르크 계통이 세워서 징기스 칸 후손을 칸으로 세웠다. 남부러시아를 영토로 포함하였으며 다뉴브 강 소국들, 리투아니아, 폴란드, 모스크바를 침략하여 조공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을 포획하여 노예로 판매하고 또는 동맹을 맺기도 했다. 시베리아의 카잔 칸 국와 아스트라 칸 국에 대한 지배권을 다투면서 1571년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불태웠다. 1572년 몰로디 전쟁에서 모스크바에 지면서 시베리아에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1600년대 러시아가 이미 충분히 강해져 크림 칸 국은 더 이상 약탈을 할 수 없었다. 1600년대 볼가강 하류에 칼믹 칸 국이 생겨 이들은 러시아에 기마병을 지원하였다. 많을 때는 4만 명의 기마병을 지원하였다. 1735~39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연합하여 크림 칸 국을 초토화시켰으며 결국 1783년 러시아에 편입되었다. 이후 러시아는 흑해에 진출하였고 결국 러시아와 오스만 튀르크가 1800년대 여러 번 전쟁을 하여 결국 오스만 튀르크가 패배하여 제국이 점차 와해되었다.
사진 1 러시아에 정복당한 칸 국들(러시아 남부 국경 쪽으로 오른쪽으로부터 크림 칸 국, 아스트라한 칸 국, 카잔 칸 국, 시베리아 칸 국이 보인다)
동시베리아 지역에는 황인종인 아시아인종이 몽골에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살았으며 몽골제국이 몰락하여 이후 러시아가 진출하기 전에는 여러 부족들이 다양한 지역에 퍼져 생활하고 있었고 북 시베리아에서 베링해협까지는 소수의 사람들만 거주하였다. 몽골인종이 이들 지역을 거쳐 베링해협을 건너 미주대륙에 거주하게 되었다. 현재는 바이칼 지역에 여러 자치국이 있는데 이들 주민들은 몽골계통이고 이전에는 몽골민족의 지파로 생각하였지만 현재는 몽골국과 분리된 별도의 민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시베리아의 남부였던 중앙아시아에서 몽골 만주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다양한 유목민들이 상황에 따라 거대국가를 형성하며 한국, 중국, 중동, 유럽을 공격하여 약탈을 행했다. 시베리아 남부 지역의 광범위한 초원지대에서 만주에 이어지는 지역에서는 스키타이, 흉노, 투르크(돌궐), 몽골, 만주족 등이 다양한 국가를 형성하고 그 남쪽의 농경국가들을 침략하고 지배하였다. 13세기 이후 몽골과 투르크가 강성해져 다양한 칸 국을 세우며 동부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인도, 동아시아 등을 점령하였다. 가장 마지막에 사라진 유목민 출신이 지배한 제국은 인도의 무굴(페르시아말로 몽골이라는 뜻)제국이다. 하여튼 세계를 호령하였던 남부시베리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유목민들은 1500년대 이후 점차 러시아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러시아는 결국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점령하였다. 중국은 유목민과 유사한 만주족에 정복당해 청나라가 되었지만 결국 만주, 몽고, 중앙아시아의 많은 땅을 흡수하였다.
러시아와 시베리아
모스크바가 러시아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시초는 대공 이반3세(재위 1450-1505)로 볼 수 있다. 그는 모스크바공국의 군주로 있으면서 모스크바 공국을 중앙집권국가로 성장시켰다. 1453년 비잔틴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에 멸망하자 모스크바는 정교회의 본산이 되었고 이반3세는 비잔틴제국의 ‘쌍독수리’ 문장을 자신의 가문 문장으로 채택했고,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반3세 치하에서 몽고의 황금군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서부시베리아 지역으로 조금 진출하여 지역에 있는 부족을 복속시켰지만 아직 시베리아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반3세의 아들인 이반 4세(재위 1533~1584)는 1547년 정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짜르(로마황제)의 칭호를 받았다. 공식적으로 공국의 시대를 마감하고 러시아 황제가 되어 제국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반4세의 시기부터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이 시작되었다. 이반4세는 1552년 우랄산맥 서쪽의 카잔 칸 국을 침공하여 대량으로 학살하며 정복했다. 1556년에는 카잔 칸 국 남부 카스피해 북쪽에 있는 아스트라한 칸 국(황금군단 수도 사라이에서 황금군단이 사라진 다음 생긴 칸 국이다)을 점령하였다. 이들 지역은 카잔과 아스트라한은 1600년대부터 러시아의 시베리아 및 중앙아시아 진출기지로 활용되었다. 이들 지역에서 1593년 모든 모스크가 파괴되었고, 1708년 형식적으로 남아있던 칸 국 자체도 없앴다. 이들의 일부가 카자흐스탄 북쪽에 있으면 타타르스탄 공화국이다. 현재도 인구의 48%가 타타르 인이다. 원래 타타르는 몽골 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투르크 계통이나 이주한 슬라브계통도 혼합되어 현재는 원주민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1570년대 이반4세는 스트로가노프에 전권을 주어 러시아인을 우랄산맥으로 이주시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우랄산맥의 동쪽에 있는 시베리아 칸 국이 이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스트로가노프는 1577년 코자크 족을 고용하여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칸 국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코자크 족의 추장 에르마크의 통솔 하에 800명이 스트로가노프의 물자지원을 받아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칸 국으로 진격하였다. 1582년 칸 국의 빈약한 군대를 물리쳤지만 여러 곳에서 반란과 저항이 지속되고 1585년 에르마크의 군대가 패하고 에르마크가 죽자 러시아인들은 우랄산맥을 서쪽으로 후퇴하였다. 하지만 칸 국의 수도는 파괴되었고 칸 국은 분해되어 대대적인 저항은 불가능했다. 다음 해에 다시 러시아군대가 우랄산맥 동쪽으로 넘어와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 이들 요새를 칸 국의 저항군들은 정복할 수 없었다. 점차 요새가 확산되면서 1590년대 우랄산맥의 동쪽으로 넘는 루트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었다. 그 후 시베리아의 많은 모피교역에 흥미를 느낀 코사크에 의하여 이 정복이 추진되어 1619년에는 예니세이 강까지 도착하였다. 북쪽 시베리아에는 거주자가 적어 탐험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1620년 피안다가 이끄는 모피 사냥꾼들이 8000km에 걸쳐 시베리아의 강들을 대부분 탐험할 수 있었다. 레나 강에 이르는 과정에서 북시베리아의 야쿠트족을 만난 최초의 러시아인이 되었고 레나 강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와 다시 앙가라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부랴트족을 만났을 것이다. 야쿠트족과 부랴트족은 현재도 동부 시베리아의 주요 거주자들이다.
사진2 강을 따른 시베리아로의 팽창(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있다)
1627년 부랴트족으로부터 세금을 성공적으로 거뒀으며 1632년 코사크 족을 보내 북동시베리아의 야쿠트족을 탐험하게 하고 레나강변에 요새를 세우고 야쿠트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두도록 하였다. 여기에서부터 오호츠크해 방향으로, 북극해로, 베링해협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638년 바이칼 근방을 탐험하기 시작했고, 1639년 태평양의 오호츠크해에 도착하여 요새를 건설했으며, 여기에서 더 남쪽으로 진전하여 1640년 아무르 강에 도달하였다. 1643년 남부 바이칼산맥을 넘어 바이칼호수에 도착하였다. 1640년대 몇몇 저항을 극복하고 몽골계의 부랴트족을 정복하였다. 이후에 시베리아 원주민이 인구밀도가 아주 낮기 때문에 별다른 조직적인 저항은 없었다. 1650년 베링해협에 도착하였고 1651년 캄차카반도를 탐험하였다. 1649년에서 53년 사이 아무르 강 유역과 연해주를 자세히 탐사하면서 청나라군대를 만났고 또한 조선군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1652년 바이칼 호 지역을 합병하고, 1654년에는 네르친스크 등의 요새를 건설하였다. 이때까지 시베리아의 거의 전 지역을 탐사하고 석권하였다. 1689년 중국과 네르친스크조약을 맺어 중앙아시아·몽골 접경지대 북쪽의 전 시베리아지역을 러시아 통치지역으로 확정하였다. 1733년부터 북극해, 캄차카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1741년 베링은 알라스카 본토를 유럽인으로 처음 발견하였다. 베링의 배가 난파되어 베링 섬에 도착하여 결국 베링은 베링 섬에서 앓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선원은 바다표범 가죽을 가지고 캄차카로 돌아왔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바다표범가죽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는 바다표범 가죽을 확보하기 위해 알라스카 이어서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달려갔다. 결국 모피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알래스카는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결국 알류샨열도의 원주민들은 모피회사의 농간으로 노예가 되어 바다표범을 잡아야 했고, 강제로 이주당하고 가족이 분리되자 원주민은 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수백 명에서 수십 명이 러시아인의 총에 의해 죽어나갔다. 마을주민 전체를 죽이기도 했다. 땅도 대부분 러시아인이 차지하였다.
사진3. 러시아의 팽창(1460-1894)
러시아는 1577년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칸 국을 공격하면서 100년도 되지 않아 초기를 제외하면 거의 저항 없이 시베리아를 차지하였다. 결국 우랄산맥 서쪽의 카잔 칸 국에서부터 우랄산맥 동쪽의 몽골계 칸 국, 부랴트 족, 야쿠트 족의 모든 지역들이 순식간에 러시아로 넘어가게 되었다.
왜 시베리아를 공략했을까?
당시 유럽에서 귀족들이 즐겨 입던 모피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상층들은 모두 모피를 입어 추위를 막았다. 이 당시 직물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모피만큼 추위를 막기에 좋은 것은 없었다. 더구나 몇 마리에서 몇 십 마리의 동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비싸서 왕족이나 귀족들이나 부자들만 입을 수 있었고 그래서 서로 위세를 자랑하기 위해 더 좋은 모피를 추구하였다. 중세에는 유럽에 모피를 공급하기 위해 북구에서 흑해에 이르는 지역에서 모피들이 수집되어 유럽에 공급되었다. 러시아 지역에서 아주 중요한 교역품이어서 강을 타고 교역지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1500년대 이후 유럽은 지중해와 인도항로를 통해 향료를 구매하였고, 시베리아나 북미대륙을 통해 모피를 확보하고 있었다. 시베리아(러시아)와 북미대륙(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원주민과의 교역을 통하여 모피를 수집하였다. 1600년대 이후 러시아가 시베리아에 진출하면서 담비, 여우, 족제비, 스라소니, 해달, 바다표범의 모피를 확보하여 러시아의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에 공급하였다. 1600년대 러시아는 모피교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다음은 북미대륙에서 나오는 모피였다. 모피는 러시아의 최대 수출품이 되어 러시아가 유럽에서 무기나 여러 물품을 사오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러시아는 남쪽 유목민(즉, 몽골이나 투르크족)으로부터 시베리안 원주민을 보호한다며 세금을 뜯어냈는데 세금을 모피로 받았다. 또한 시베리아에서 상인들은 칼이나 다양한 물품을 주고 원주민으로부터 모피를 대가로 받아서 러시아와 유럽으로 수출하였다. 또한 해달과 바다표범의 모피를 얻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알래스카 해안에서 캘리포니아해안까지 진출하였었다. 하지만 1800년대 이후 질 좋은 직물이 발전하면서 점차 모피의 수요가 감소하였다. 또한 하도 남획하여 모피의 공급이 줄어들었다. 점차 모피는 동물을 양육하여 얻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야생모피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