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덕의 서구문명 다시보기 ① 유럽 대륙은 없다
글쓴이 이정덕(전북대 교수, 문화인류학 전공)   

서구문명비판 시리즈를 시작하며

나는 <열린전북> 2006년 4월호에 “유럽문명의 날조”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리스로부터 현재로 이어진 유럽문명이라는 생각은 날조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동안 여러 책이나 자료들을 접하면서 서구우월주의가 유럽문명의 근저에 깔려 있고 서구우월주의가 온갖 거짓말과 왜곡으로 유럽문명을 우월한 것으로 만들어 왔음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서구문명이 제기한 대부분의 문명관련 주장이나 이론들이 과장, 왜곡,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그것을 사실인양 가르치면서 우리는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심 그리고 우리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쌓아왔다. 시리즈 글에서 밝히겠지만 일관된 서구문명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구문명이 창조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서구가 민주주의를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서구가 자본주의를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서구가 학문과 사상을 처음 시작한 것도 아니고, 서구가 우월한 것도 아니다.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라는 책에 따르면 1800년대 이전의 서구는 세계의 변방에 불과하였다. 금속무기가 없던 인디언들만 겨우 정복하였고 아직 아프리카조차 공략하지 못하였다. 13세기 몽고가 헝가리와 폴란드를 순식간에 휩쓸면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까지 침략하지 않았던 것도 그곳이 별로 취할 것이 없는 변경지역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이 미주대륙을 탐험한 것도 자기들보다 우월하고 부자라고 생각한 중국이나 인도로 진출하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다. 영국의 허드슨은 1619년 지금은 ‘허드슨 강’이라고 알려진 뉴욕의 강을 탐험하면서 그 강을 타고 올라가면 황금의 나라 중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다.
17세기 초까지의 유럽탐험대는 어떻게든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의 넘치는 황금(그 당시 서구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아시아는 이미 수많은 기술과 문명을 서구에 전달하였고 서구는 아시아의 부와 문명에 압도당해 왔었기 때문이다.
1500년대 이후 서구는 아주 운 좋게 중남미를 점령하였다. 중남미에서 금은을 착취하여 어느 정도 유럽의 살림이 폈고, 이를 기초로 점차 세계의 중심인 아시아와의 무역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1800년도가 넘어서야, 유럽의 무력이 많이 발전하고 산업혁명을 이룩하면서, 아프리카나 중국이나 인도에 직접 침략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1800년 초반에야 중국을 넘어설 수 있었고, 180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자신들이 인종적으로나 문명적으로 세계최고인 것으로 각종 자료를 왜곡하면서 점차 유럽을 그리스로부터 출발한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그리고 세계의 좋은 제도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창조된 것처럼 왜곡하였다.
이 시리즈를 통해 서구가 행한 서구 또는 세계에 대해 어떻게 왜곡과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을 최고의 인종 그리고 최고의 문명으로 만들었는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유럽은 대륙이 아니라 반도이다

서구인들이 세계에 퍼트린 여러 가지 거짓말들이 있다. 명백하게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로 각인된 것들이 많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유럽이 대륙이라는 주장이다. 유럽의 면적(약1090만㎢)은 중국(960만㎢)보다 조금 큰 정도에 불과하며 유럽인구(러시아포함 약 7.5억)는 중국(13억)이나 인도(11억)보다도 적다. 그렇다면 유럽이 과연 독자적인 대륙이라고 할 수 있나?
대륙은 거대한 땅덩어리라는 뜻이다. 다른 땅덩어리와 구분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럽은 아시아와 합쳐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대륙이 될 수 없다. 앞의 지도에서 보듯이 유럽은 아시아와 구분되는 땅덩어리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불룩 대서양쪽으로 튀어나간 모습이다. 유럽은 아시아에 붙어 있는 반도에 불과하다. 반도의 정의는 대륙에 붙어 있어 바다로 튀어나가 있는 부분이다. 지도를 보면 유럽이 아시아대륙에 붙어 있으면서 대서양쪽으로 튀어나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대서양 방향으로 튀어나가 있고 이탈리아가 그곳에 붙어 있다. 서구를 묶어서 하나의 큰 반도로 취급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인 관점이다. 동구는 아시아대륙의 일부이다. 아시아의 지리적 중심지는 카자흐스탄이나 몽고로 볼 수 있다. 만약 유럽이 대륙이라면 인도나 중동이나 또는 중국도 각각 별개의 대륙이 되어야 한다.
인구의 수로 보나, 면적으로 보나, 또는 땅의 형태로 보아서 유럽은 대륙이라고 불릴 수 없다. 또한 문명적으로 보아도 그리스와 로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아 생긴 지중해권역이었지 독립된 독자적인 유럽문명권이 아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그리스, 로마, 유럽은 지중해-아시아의 일부로서 작동해왔던 것이지 독자적인 경제를 유지해왔던 것도 아니다. 모든 면에서 유럽은 독립적인 대륙이 아니라 아시아 대륙에서 대서양 쪽으로 튀어나간 형태의 큰 반도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대륙의 신화(the Myth of Continents)>라는 책을 쓴 루이스와 위겐은 유럽학자들이 인구도 적고 면적도 별로인 유럽을 대륙이라고 주장하고 그 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인도를 아대륙 그리고 면적도 유럽과 비슷하고 인구는 두 배나 많은 중국은 하나의 국가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유럽이 인도나 중국과 비슷하고 프랑스나 독일은 인도의 한 주나 중국의 한 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시작

유럽이라는 말은 현재 터키에서 이스라엘에 이르는 지역의 셈족어 ‘에렙(ereb)’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에렙은 ‘해가 지다’란 뜻인데, 당시 이스라엘에서 터키의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페니키아인이 보기에 해가 그리스 쪽으로 졌기 때문에 그리스에 이런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보다 확실한 출처는 그리스 신화의 페니키아 공주인 유로파(Europa)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제우스가 납치해서 크레타 섬에 버렸는데 결국 크레타의 왕과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로파의 이복자매로 아시아 (터어키 지역의 명칭이 되었다고 아시아 전체의 명칭으로 확장됨)와 리비아(리비아 지역에 사용되다가 나중 아프리카로 불렸다. 이 말이 확장되어 아프리카 전역을 의미하게 되었다)가 있었다.
<블랙 아테나>를 쓴 마틴 버낼은 유럽개념이 원래 그리스 신화의 유로파에서 생긴 그리스의 창조물이라고 강조된 것은 1800년대 초반 유럽학자들이 유럽의 순수성을 위해 유럽개념이 아시아(페니키아)에서 만들어진 것을 숨기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하튼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유럽이 어느 지역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그리스와 야만인을 구분하였지만 유럽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가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있다고 말했다. 유럽은 그리스문명과 구분되는 북쪽 야만지역으로 사용되는 경향도 있었고, 그리스를 포함하는 것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스인에게 그리스(서)와 페르시아(동)의 대립적 개념이 있었지만 북부야만지역과의 대립개념도 심했다. 즉, 그리스나 그 북부가 유럽이라는 하나의 동질 지역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델란티가 쓴 <유럽의 창출Inventing Europe>이라는 책에 따르면 로마시절에도 유럽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의 중심지로서 로마, 그리고 인종으로서 로마인에 관심이 있었다. 자신들이 프랑스, 독일, 북구, 동구 등과 같은 지역이라는 또는 같은 문화권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동서는 같은 수준의 문명지역이지만 북부지역(프랑스, 독일 등)은 야만지역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로마제국의 내해로서 지중해 지역의 연관되어 있지만 알프스산맥으로 막힌 북쪽은 야만지역으로 지중해와 별개의 지역으로 생각했다. 이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각각 터키와 리비아 지역에 있는 주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북부아프리카인들도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로마인으로 불렸다.

이슬람과 대비되는 유럽의 등장

632년 마호메트가 죽은 다음 그의 이슬람 추종자들이 중동과 아프리카 전역을 점령하고 711년에는 지금의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산맥까지 점령하고 심지어 시칠리섬, 크레타섬 등을 점령하여 실질적으로 지중해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슬람이 지중해를 장악함에 따라 로마나 프랑스 지역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이슬람에 압박당하는 기독교라는 의식이 강화되면서, 유럽이라는 말이 기독교지역과 점차 동일시되었다. 기독교가 독일, 북구로 퍼지면서 점차 유럽이라는 개념이 북구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인이라는 의식은 없었고 기독교인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유럽군대가 이슬람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던 12세기 십자군 전쟁 시절에도 그리스, 시리아, 이란에서도 십자군을 프랑크 인으로 불렀다. 몽고가 유럽을 침략하던 13세기에도 이들을 프랑크 인으로 보았다. 유럽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유럽은 소수만 사용하는 개념이었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동쪽이 어디까지인가는 불명확하였다. 고대그리스 이래로 ‘돈강’이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하는 선으로 인정되었지만, 오스만 투르크가 14세기 현재의 터키지역에서 기독교를 축출하였고, 이어서 15, 16세기 그리스,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헝가리까지 점령하면서 동쪽 경계가 더욱 불분명하였다. 슈말레는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할 때, 동로마제국을 ‘이교도에 짓밟힌 유럽’이라고 생각하면서 유럽인이라는 의식이 퍼져나갔다고 주장한다. 즉, 이슬람에 위협받는 기독교인이라는 의식이 동질의 유럽인이라는 의식을 강화했음을 보여준다.
18세기까지 러시아와 폴란드를 제외한 동유럽의 대부분이 이슬람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산하에 있어서 유럽의 동쪽 경계가 애매하였다. 결국은 우랄산맥이 유럽의 경계로 결정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서방 지향적이었던 러시아 짜르 페터 1세의 대외정책이 있었다. 그는 러시아가 유럽대륙의 경계 내에 들어있지 않으면 프랑스, 영국 그리고 합스부르크 제국과 같은 다른 유럽 세력들이 자국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궁중 지리학자들에게 제반 공공기관에서 발행되는 지도에 우랄산맥이 유럽의 동쪽 경계라고 표시하도록 지시했다. 러시아가 페터 대제 이후 유럽문제에 긴밀하게 간여하면서, 유럽 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러시아를 유럽국가로 인정하고 또한 유럽의 동쪽 경계와 관련하여 러시아가 내린 정의를 인정하였다.

유럽 vs 아시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럽이나 아시아가 단순히 에게 해의 동서쪽을 나누던 개념에서 큰 대륙을 가르는 개념으로 확장된 것이다. 유럽학자들이 유럽을 기독교와 동일시하여 우랄산맥까지를 유럽대륙으로 만들고 나머지 지역은 모두 아시아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유럽을 기독교 문명권으로 한정하여 정의하고 아시아는 모든 종교와 문명을 다 포함하는 지역으로 정의하는 것은 자기들 마음대로 정의한 것이다. 유럽이 180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하여 그들의 용어가 세계에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대륙이 물에 의해 분리된 커다란 땅덩어리라는 개념으로 보거나, 문명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는 잘못된 대륙구분이다. 순수한 지리적 입장에서 유럽은 대륙이 아니라 아시아에 붙어 있는 큰 반도에 불과하다. 문명적으로 보아도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숭배하는 종교이고, 인종적으로도 유럽인이나 중동인은 같은 계열이다. 오히려 동아시아가 이들과 종교도 본질적으로 다르고 인종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중동은 나머지 아시아보다 유럽에 가깝다. 하지만 세계를 지배한 유럽인들은 이러한 유사성을 부정하고 하였다. 1800년대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중동과 유사하다는 것은 유럽인의 인종적 순수성과 우월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따라서 유럽을 조그만 지역으로 한정하여 대륙으로 고착시킨 것이다. 이에 비해 아시아는 아무런 동질성이 없는 광범위한 지역을 아시아로 통합해버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슬람에 압박당하면서 이들과 구분하고 유럽인 스스로가 더욱 우월하다는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유럽을 별도의 대륙으로 고착시킨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유럽은 내부적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은 전체 대륙의 일부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현재에도 타당한 말이다.

 

 

열린전북 2008년 4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