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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관련된 세계적인 거짓말 중의 하나가 그리스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문명을 형성하였고 이것이 이어져 서구문명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거짓말이 섞여 있다. 하나는 그리스가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문명을 형성했다는 거짓말이고 두 번째는 그리스 문명이 서구문명으로 이어져 왔다는 거짓말이다. 두 번째에 관련된 내용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과연 그리스가 독창적인 문명이었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이집트나 중동문명이 55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그리스문명은 2500년 전부터 시작되어 3000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독자적으로 문명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계속 되고 있다. 3000년간 그리스가 수백 km또는 많아야 1000km 떨어진 이집트나 중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스스로 문명을 시작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 서구가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구인들이 객관적인 증거들조차 무시하여 만들어낸 날조에 가까운 생각이다. 그리스가 중동과 이집트 문명의 파생문명이라는 주장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즉, 그리스가 독창적인 문명이 아니라 이집트와 중동의 하위문명이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책인 마틴 버낼이 쓴 <블랙 아테나>이다. 그리스 문화는 이집트와 페니키아 (셈족, 지금의 유태인 계열)로부터 파생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외에도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와 중동의 파생물이라는 많은 논문과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크레타섬과 이집트문명 그리스문명 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한 문명은 크레타문명이고 크레타문명이 퍼져 그리 스 문명이 시작되고 주장되고 있다. 따라서 크레타문명이 서구문명의 최초의 요람이었다고 주장된다. 그렇지만 크레타문명은 이집트문명의 아류라는 점은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크레타 섬에는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은 많은 유물들이 나오고 있고, 또한 크레타 인들이 3000여 년 전에 이집트에서 신라방(당나라 신라인 거주지)같은 것을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가장 선진 문명지였던 크레타섬은 이집트 연안으로부터 500km도 되지 않는 곳에 있다. 옛날에는 바다가 육지보다 더 좋은 고속도로였다. 바다길 500km 정도는 문명의 관점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다. 참고로 군산에서 산동 반도까지 거리는 약 400km이다. 크레타섬에는 약 8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이집트의 영향으로 4500년 전에 문명이 시작되었다. 이때 이미 이집트와 교역이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2천년 이상 이집트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집트 영향을 받아 발전한 크레타문명은 주로 이집트나 중동, 에게 연안지역과의 무역을 기초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그리스 본토까지 지배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도 그리스 본토사람들이 크레타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나온다) 이 당시 그리스 본토는 아직 미개 지역이었다. 크레타섬에서 그리스본토까지는 200km가 되지 않으며 목포에서 제주까지보다 조금 멀다.
(크레타 섬의 위치)
이집트와의 거리, 크레타 신화나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이집트의 영향, 이집트가 훨씬 방대한 문명을 일찍부터 발전시킨 사실, 상호 교역, 크레타방(신라방과 같은)의 존재 등은 크레타문명이 이집트의 파생문명임을 분명히 해준다. 그리스는 이러한 크레타의 영향도 심각하게 받았지만 직접적으로 이집트, 페니키아, 다양한 중동(수메르에서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갈수록 밝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동방의 문화식민지 3000여 년 전에 그리스는 이집트의 심각한 영향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도 테베라는 도시가 있으며 이집트 유물들이 그리스에서 발굴되고 있다. 이집트인이 그리스에 와서 통치를 했다는 전설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이집트가 그리스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서구학자들은 대부분 이집트나 중동의 영향이 아주 미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가 독창적으로 문명을 만들고 여기에 이집트와 중동의 영향이 조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반론이 앞에서 언급한 마틴 버낼이 쓴 블랙 아테나이다. 그리스 신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건너 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 유명한 아테네 여신이 원래 이집트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원래 이집트에서 네이트라고 불리던 여신이 그리스로 넘어오면서 아테나 여신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아몬으로 불리던 신은 그리스에서 제우스로, 라라고 불리던 태양신은 그리스에서 아폴론으로, 오시리스는 디오니소스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이집트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하였고 헤로도토스도 그리스 신의 이름이 한두개를 제외하고는 이집트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스신화의 스핑크스, 불사조, 날개뱀 등도 이집트 신화가 원전이다.
(좌측이 네이트 여신, 우측이 아테나 여신)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그리스문명의 뿌리는 동방(이집트와 중동)이며, 많은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그리스는 한때 이집트의 식민지였다고 쓰고 있다. 여러 학자들은 그리스가 3000년 전에서 4000년 전 사이에 이집트의 식민지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버낼에 따르면 19세기 유럽의 심각한 인종차별적 생각으로 서구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이런 주장을 부정하고 그리스가 중동과 아무런 관련 없이 독창적으로 문명을 만들었다고 가공하여 퍼트렸다는 것이다. 백인들이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신념에 빠져 과거에서부터 자신의 인종을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그렇게 왜곡하였다고 버낼은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이집트왕의 통치나 지명 등을 예를 들었는데 버낼은 신화에도 그러한 내용이 많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핵심 영웅인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오디푸스 등이 모두 동방에서 온 사람들인데 신화화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어의 대부분도 이집트와 페니키아에서 온 동방언어들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알파벳도 페니키아인들의 것을 모방한 것이다. 건축물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예술도 갈수록 동방의 영향을 받았음이 밝혀지고 있다.천문학이나 수학도 동방에서 그리스보다 1000년 이상 일찍 통용되는 것을 그리스사람들이 책으로 썼음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 훨씬 이전에 동방에서 사용하던 정리임이 밝혀졌다.
그리스학자들은 왜 이집트로 유학을 갔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집트가 선진 문명이었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들이 미국을 가서 공부하듯이 그리스학자들이 이집트에 가서 공부를 했다. 대체로 이집트가 학문적으로 선진지역이었지만 기록이 얼마 남지 않고 대신 그리스의 기록이 많이 남겨져 마치 그리스의 업적인 것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에 속하는 탈레스(BC 640-546)은 이집트에 유학하여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기학학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진 피타고라스(BC 580-500)가 이집트에 유학하는 동안 공부한 것을 정리한 것이 피타고라스 정리이다. 아르키메데스, 데모크리토스, 솔론, 플라톤, 유클리드,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에우도소스 등이 이집트에서 공부하였다. 플라톤도 소크라테스가 죽은 다음 이집트를 방문하였다고 그곳에서 공부했다는 설도 있다. 플라톤은 솔론이 이집트에서 들었다는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기록하였다. 더구나 플라톤의 정치사상도 이집트 적 사상의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되고 있다. 헤로도토스 등 당시의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이집트에 대해 열심히 언급하였다. 헤로도토스가 그리스종교는 이집트종교에서 나왔다고 하였듯이, 이소크라테스는 이집트가 철학의 기원지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집트에서 수학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스는 건축, 의술에 있어서도 이집트로부터 배웠다. 당시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최고라는 관념이 있었고 그리스 사람들도 이를 믿었다 (그리스 사람들이 알렉산더 대왕 이후에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믿었지만). 그래서 그 당시 수많은 그리스 사람들이 선진문명을 배우러 이집트로 여행을 가거나 유학을 갔다. 그리스가 독창적인 문명이었고 이집트가 그리스보다 후진 문명이었다면 왜 이들이 이집트에 공부를 하러 가고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로 여행을 떠났을까? 그리고 이집트에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은 그리스의 최고의 수학자나 철학자가 되었을까? 명백하게 고대그리스는 이집트문명을 열심히 배웠고 이집트의 온갖 문화나 지식을 그리스로 들여오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스보다 거의 3000년 가까이 일찍 문명이 시작되어 축적되어왔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그의 장군으로 이집트를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 세계 최대의 도서관을 설립한 이유도 이집트가 선진 문명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린전북 2008년 5월호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