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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구가 이를 받아들여 현재의 민주주의로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근대 서구가 참조한 정치체제는 그리스의 것이 아니라 로마의 공화정이었다. 아테나의 정치체제는 주민의 투표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독특한 형태였지만 노예제 국가였고 여성이 제외되었으며 또한 자유민 남성의 참여도 평등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과연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는 아테나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던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대의정치는 아테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로마의 공화정의 몇가지를 참고한 것이다. 현대의 대의정치가 영국에서 왕과 신하의 권한싸움을 거쳐 신민(臣民)의 권한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여 18, 19세기의 미국, 프랑스를 거치면서 현대적 대의정치체제로 발전한 것이지, 아테네의 민주체제나 로마의 공화정이 발전한 것은 아니다. 아테네가 현대 민주주의 기원이라는 말은 19세기에 만들어낸 신화이고, 로마의 공화정은 미국과 프랑스가 단순히 참고했던 체제이다. 선거를 통한 현대의 대의정치는 실질적인 과정과 기능이 로마 공화정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로마 공화정이 현대 대의정치체제의 기원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테네의 민주체제 보통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믿어지고 있다. 아테네는 원래 고대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와 마찬가지로 왕과 귀족중심의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원전 507년 10개의 지역에서 각각 50명을 선출해 구성된 500명의 민의대변기관이 투표로 특정 정치인을 추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를 기초로 점차 민회가 발전하여 민회에 20세 이상의 성인 남성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민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더 나아가 추첨으로 뽑힌 사람이 1년씩 공직을 맡도록 했다. 따라서 공직을 맡거나 정책을 결정하거나 문제 있는 정치인을 추방하는 결정에 20세 이상의 자유민인 남성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고위직에는 재산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최고의 아테네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에 반대하는 도편투표조각)
프레시안에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글을 쓴 이화여대 강철구 교수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인구가 45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중 여성, 노예, 거주외국인을 제외하면 실체 민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유민인 성인 남성은 4만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조차도 일반인들은 생업 때문에 민회에 참석하기 어려웠다. 잘해야 6천 명 정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민회는 드물게 열렸다. 민회가 열리더라도 투표도 대충 손을 들어 했다. 실제 정치는 부자들이 주도하였고 민회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동가들이 많이 타나났다. 귀족정보다 일반 자유민의 발언권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평민은 실제 정치에 제대로 참여하기 힘들었고 또한 선동정치에 따른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살았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체제를 중우정치라고 비판하였다. 민주체제는 초기에 시민들의 참여정신과 열정을 자극해 민주체제가 아테네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힘을 이용하여 대외적으로 주변 도시국가를 종속국가(동맹체제라는 이름으로)로 만들고 조공을 받았으며, 저항하면 가서 죽이고 또는 사로잡아 노예로 팔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테네와 같은 정치체제가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로 퍼졌다. 지속되는 전쟁으로 아테네는 100년쯤 지나 약체국가가 되었고 결국 BC 338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2세의 치하에 들어갔다. 민주체제 중간에 과두체제 등이 있어 아테네에서 약 100년간의 민주체제와 번성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테네와 동맹국들. 주로 에게해 주변에 있다) 아테네는 근본적으로 노예국가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도 노예국가를 민주국가라고 지칭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 입장에서만 보면 아테네의 정치체제를 민주체제라고 할 수 있다. 소수지만 어쨌든 자유민 남성들이 돌아가며 공직도 맡고, 투표도 했고, 정치인들을 추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체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이러한 민주체제는 초기에 커다란 성공을 거뒀지만 결국 왕정에 패배했고 사라졌다. 오히려 왕정이 그 당시의 상황에서 아테네와 같은 민주체제보다 더 효율적인 체제라고 볼 수 있다. 민주체제는 모두 사라지고 왕정이 휩쓸었으니까. 아테네의 민주체제는 소국가가 전쟁과정에서 구성원의 열정을 동원하기 위해 나타난 일시적인 체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공화정은 민주체제인가?
로마의 정치도 아테네처럼 남성 시민권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BC509년 왕정을 끝내고 귀족회의인 원로원에서 집정관을 선출하여 통치하도록 하였다. 1년 임기의 집정관을 2명 두었는데 BC 4세기 중엽부터 한명의 집정관은 평민이 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선출된 사람이 임기 동안 통치하여 공화제라고 한다. 집정관은 서로 협의하여 권한을 행사하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 서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전쟁과 같은 위급한 문제나 서로 이견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 집정관은 6개월 임기의 독재관을 지명하여 전권을 행사토록 하였다.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은 종신직으로 집정관을 선출하기도 하지만 견제하기도 하였다.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평민집회에서 선출한 1년 임기의 호민관을 두어 평민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이는 로마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평민들의 참여가 늘어나고 이들의 권리를 확대시켜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정복전쟁에 나서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민관은 집정관과 원로원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독재관의 결정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호민관은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의 구성원이 되었다.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로마도 평민의 전쟁참여를 통해 작은 국가에서 점차 커다란 국가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아테네는 주변의 주도권을 장악했지만 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데 비하여 로마는 제국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유민들의 열정적인 참여는 전쟁 성공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로마에서도 평민들이 평민집회에서 호민관을 선출하고 귀족과 함께 민회에 참석하여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를 통해 평민들이 능동적인 전쟁참여가 있었고 이것이 전쟁에서의 성공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제국의 영토) 하지만 민회를 소집하는 정무관은 집정관이 추천하며, 집정관은 민회에서 선출되어 원로원의 승인으로 취임하니, 원로원과 의견이 다르면 민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었다. 귀족들이 계속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특히 호민관이 평민의 권한을 확대하려 하자 귀족들이 반대하였다. 호민관이 토지개혁과 시민권 확대를 시도하자, BC 122년 원로원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호민관을 죽였다. 그 이후 귀족이나 독재관 등이 호민관을 죽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귀족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 폭력을 매개로 횡행하였다. 결국 BC44년 시저가 종신독재관이 되면서 황제가 되었다. 이후 로마의 공화정은 사라지게 되었다. 종신직인 황제가 통치권한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로마는 공화정은 귀족의 원로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평민들도 투표로 호민관을 선출하거나 법률을 제정하는 데 참여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의정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공화국을 건설하면서 로마공화정을 참고하였으며, 미국은 로마의 원로원(senatus)을 모방하여 상원(senate)을 두었고 로마의 민회와 유사한 하원을 두었다. 또한 대통령도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선출하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로마 공화정이 민주체제인가? 민주(democracy)라는 말은 민 또는 민중이 통치 또는 지배한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공화정은 민중은 투표권을 가지지만 통치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 통치하거나 지배하는 자는 선출된 사람이다. 따라서 공화정은 민주주의가 아니고 대의정치이다. 민중이 투표권을 행사하여 통치자를 선출하거나 바꿀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간접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선출된 통치자나 지배자가 평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귀족의 의사만 주로 반영하는 경우, 이러한 체제를 간접민주주의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다. 로마처럼 귀족이 주도한 사회는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른 지역의 민주주의
구성원들의 일부가 (아테네나 로마에서 노예, 여성, 비자유민 또는 비시민은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참여하여 자유스럽게 논의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이러한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 몇 천 년 간 여러 유목민사회들은 각각의 부족이나 소집단들의 장로들을 모아 회의를 거쳐 만장일치가 되어야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왕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혈연집단의 어른들이 친족을 대표하여 장로회의에 참석하여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신라가 건국을 할 때 나정의 알에서 박혁거세가 나왔고 6촌장이 회의를 해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는 말이 나온다. 가야에서는 가락 9干이 같이 천신을 맞이했다고 쓰여 있고, 고구려는 5부족장이 합의를 통해 국가를 만들었다고 쓰고 있다. 또한 징키스칸도 몽고의 부족들의 대표가 모인 장로회의에서 칸으로 추대되었다. 물론 성인 자유민 남성이 모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그리스도 모두 참여하지는 못했다) 집단들의 대표들이 모여서 합의해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가 성립되기 전에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일반적인 상황이다. 아테네처럼 자유민이 투표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를 수렴하는 과정이 있었다. 족장이나 촌장조차 없던 원시시대에는 가족이나 친족의 나이 먹은 어른(長老)들이 모여 논의하여 집단의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많이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장로들은 대개 각 친족이나 혈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족이나 혈족의 의견을 대변하여 장로들이 토론하여 결정하면 구성원들이 이를 따랐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이나 태평양의 부족사회를 살펴보면 집단의 결정과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다른 집단으로 이주해가는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집단의 일을 결정하는 데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반영하여 결정한다. 영향력이 큰 사람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마음대로 결정하는 일은 드물다. 왜냐하면 마음대로 결정하면 사람들이 자꾸 떠나게 되고 자신의 영향력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온갖 것을 주어 자신의 의견을 따르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누구라도 열심히 일해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 자신에 대한 지지자들을 증가시키면 영향력도 커졌다.
 (약 5000년 전의 우루크와 키시-유프라테스강 하류 부근에 있다) 도시국가의 상황에서도 그리스가 아닌 지역에 이미 의회와 같은 것이 있었다. 크레이머 교수가 쓴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에 따르면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약 5000년 전(아테나보다 2000년은 빠르다)에 유프라테스강 위쪽의 키시라는 도시국가가 길가메시왕이 통치하는 도시국가 우르크에 복종하던지 전쟁하던지 선택하라며 최후통첩을 보내자 길가메시왕은 연장자들이 모임 ‘상원’과 젊은이가 모인 ‘하원’에 가서 싸움을 호소했다고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나온다. 초기 수메르 도시국가에서 자유민으로 구성된 양원에서 왕을 선출하였고 중요 사항은 의회의 동의를 받아야했다.
민주주의는 서구의 독점물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원시사회에서는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결정사항을 강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고, 성인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였다. 누구나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추장사회나 소국가(도시국가나 연맹사회 등)에서도 장로, 촌장, 부족장이나 연장자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체계적인 과정이 있었다.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정도까지 민주적이었는지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기원이라고 하는 말이 타당하지 못하다. 그 이전부터 있었고, 한국에도 삼국 건국이전에 민주적인 과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현대 서구의 대의정치는 원시사회나 그리스의 민주주의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서구(서구에서 시민이 직접 정책을 결정하는 나라는 없다. 시민들은 단지 투표할 권리만 있을 뿐이다.)가 참조한 것은 그리스가 아니라 로마의 공화정이었다. 현대의 정치체제는 직접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공화제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공화제이다. 공화제는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대의정치체제이고, 좋게 봐주어야 간접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이다. 현대의 대의정치나 공화제에서는 선출된 소수 엘리트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어렵다.
열린전북 [2008년6월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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